수필소개 > 수필소개
  • 이른 초봄 하늘에 풍선을 띄우며
  • 새로운 활로를 찾아
  • 자식은 의인(義人)이요, 부모는 죄인(罪人)
  • 약사문예 13집 출간
  • 어머니가 떠나신 빈자리
  • 아버지 ! 여기는 가락 시장이어요.
  • 아들의 첫 출근
  • 행복(幸福)을 저축(貯蓄)하는 우리
  • 어머니, 그 영원하신 어머니
  • 우편 취급소 이야기
  • 나는 대한민국 장애아의 부모입니다
  • 종지사난(終之斯難)하는 약사회로 거듭나자
  • 망년회
  • 천사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 강길웅신부님의 피정 지도를 받고나서
  • 손 때 묻은 챠트
  • 감사와 칭찬
  • 주홍빛 119 천사여!
  • 차 한잔의 이야기
  • 행림(杏林) 그 그늘의 추억
  • 어머니 내 어머니
  • 내 인생과 철학과 의식을 바꿔 놓은 사람
  • 어린이 선생님과 어른 제자
  • 신이 나에게 주신 귀한 선물
  • 사시(辭施)할 것인가 사살(辭殺)할 것인가
  • 막내 졸업식
  • 세 석수장이 이야기
  • 아내 이야기
  • 어머니 손바닥에 무궁화 꽃을
  • 만년 소녀 할머니 노객(老客)
  • 청소부 밥을 읽고나서
  • 아버지 개고(改稿)
  • 아버지 Ⅱ
  • 용서 하는 자
  • 어린이 만세
  • 백송의 발자취
  • 아들 자랑
  • 『 I Love You 』 보다 『 I Need You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 밀폐된 문을 열자
  • ‘맡김’과 ‘당부’의 철학
  • 마인드 컨트롤. 그 놀라운 효과를 아십니까.
  • 어머님 발걸음
  • 오월의 연가
  • 슬픈 우리 시대
  • 오래도록 나의 애환을 달래준 테니스
  • 옥(玉)은 돌속에 있을 때 더욱 빛난다.
  • 새 봄을 맞는 기대
  • 약사 명심보감
  • 여의도의 봄
  • 사랑의 열매
  • 수필( 비들기 부화)
  • 어린 손님
  • 치료 플러스 알파
  • 아내의 가슴아픈 사연


  • 세기의 예성(藝聖) '미켈란제로'가 채석장을 지나고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는 석수장이들이 쓰다 남은 크고 작은 돌들이 버려져 있었다.
    그는 어떤 돌을 가리키며 "저렇게 아까운 것을 버리다니"하고 몹시 안타까워 했다.
    사람들은 하잘것없는 돌 조각을 가리키며 속상해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그 후, 그는 사람들이 마구 버린 돌을 주워 다가 아주 훌륭한 예수상을 만들 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느 사람들의 눈은 돌 속에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지만 미겔란제로의 눈은 버려진 돌 속에 숨어있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혜안(慧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하찮은 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지혜의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무생 물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찾을 수 있고, 아무리 황금덩이라 하더라도 치안(痴眼)으로 보면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눈을 가진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영웅이 되기도 하고 보물이 되기도 하며, 상대의 눈 높이에 따라 그것이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이것을 인간관계 학문에서는 「참 만남」이라 하고, 佛家에서는 「기연(機緣)」이라 하던가.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배로 돌아오던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지 않았던들 그는 갈릴리 호수가의 평범한 어부일 뿐이었으며, 베토벤이 쥬리에타를 만나지 않았던들 이 세상에 월광곡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藥을 사러오는 고객과 약을 골라주는 약사와의 관계도 단순히 賣買의 관계를 떠나 만남(encounting)이라는 철학으로 본다면 예사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그래서 지나다가 우연히 우리 약국에 들어온 손님이라 하더라도 나는 '소중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는 뜻에 따라, 개업 이래로 고객의 병력 기록 카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무려 12,000매에 이르고 컴퓨터에 입력된 것까지를 합친다면 족히 15,000세대가 될 것 같다.

    우리 약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카드 함에 꽂혀 있는 카드를 보면서 인력 관리의 한 방편으로 보기가 일쑤인데 꼭 그렇듯 장사 속만은 아니다.
    그렇게 기록해 놓음으로써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이 내 삶의 역사가 되었고, 나와의 여러 가지 관계를 이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에 따라 상대가 나의 보물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상대의 보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나는 무척 유익하게 활용하고 있다. 상담을 할 때면 병력이나 증세에 따라 투약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제에 참고하고 연말이면 인사를 하는데 쓰기도 한다.

    어쩌다 제약회사에서 건강에 관한 소책자가 나오면 그것을 DM으로 배포하는데도 기초 자료가 된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카드를 뒤적이며 지난 일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생활의 족적(足跡)을 반추해 보기도 한다.

    그 중에는 할머니 등에 엎혀 드나들던 젖 먹이 어린아이가 어느새 청년이 되어 대학에 가기도 하고, 손주를 업어 주던 할머니가 他界하신 것을 보면서 인생의 허허로움과 무상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약국을 수시로 들리는 고객들은 20년 동안 잘 보관되고 정리된 그것을 볼 때마다 가히 보물이라고 인정해 준다. 하지만 이런 종이 뭉치가 보물이 될 수는 없을 게다. 굳이 보물을 말하라 한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우리 막내아들을 꼽을 게다.

    막내 나이 올해 25세. 난산(難産)으로 인하여 왼쪽 대뇌에 손상을 입은 뒤로 정신발달이 약간 지체되어, 키가 미루나무만큼 자랐어도 어린애처럼 항상 내곁에서 맴돈다.

    아직은 판단이 모자라 이렇다 할 역할을 줄 수도 없고 직장을 마련해 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로 인하여 내 아내의 얼굴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우리 온 가족 마음의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거칠 새가 없 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틀림없이 그 놈이 나의 보물임을 알 수 있 다.

    하늘에 계신분이 어느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아이를 내게 맡겨 주셨으니, 그 분이 감추고 계신 뜻이 있을 것이고 천주께서 나에게 그런 아픔을 주시었으니 그 대신 나도 모르게 약속하고 계신 것이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 이렇게 좋은 일터를 주셨고, 雨後竹筍처럼 들어선 약국의 숲속에서도 살아 남게 하였고, 최근에는 인근 초대형 약국이 들어서 중소약국의 경영이 도산 위기에 처해 있어도 나를 굳건히 세워 주셨고,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른 나에게 적시에 늘 따끔한 일침을 주시곤 해 게으른 나의 기도를 문득 문득 재촉케 하였고, 매사에 항상 감사하라는 교훈을 새기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알게 모르게 陰으로 陽으로 돕고 계신 그 분은 내가 고매하고 후덕하여 받은 상금이 아니라 부족한 막내아들을 통하여 남들보다 더 많이 주시는 그 분의 큰 뜻임으로 받아드린다.

    이렇게 보면 막내는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미겔란제로가 천진스런 우리 막내를 보면서 예수를 그릴지 모르는 일이듯이, 보는 이에 따라 내 일생을 얼마든지 재평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만은 상큼한 꿈자리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