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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악소개 > 르네 케이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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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IAC Canada의 선구자, Rene Caisse
2000년 11월 15일 수요일, 온타리오주의 시장과, Reperin Canada의 대표인 T.P Maloney, 그리고 기타 고위 인사들이 Bracebridge의 Totem Pole Park에 모여 마을에서 유명했던
간호사이자 생약 차인 ESSIAC(Caisse의 철자를 거꾸로 취함)의 선구자인 Rene M. Caisse의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Brenda Wainman Goulet에 의해 조각된 이 동상은 자연 의학에 공헌한 Caisse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ESSIAC Canada international에 의해 마을에 기증되었습니다.
그녀는 1922년 생약 처방을 발견하여 이후로 암이나 기타 질병으로 힘들어 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습니다. 그녀는 평생Bracebridge를 벗어나지 않았고, 그녀의 처방이
현재 그녀의 기념비가 있는 캐나다의 Pre-Cambrian Shield에서 수확한 생약으로 만들어진 캐나다산으로 알려지기 원했습니다.
1922년, 한 환자가 간호사였던 Caisse에게 캐나다 Ojibwa 인디언의 생약 처방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자신이 그것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Caisse는 이 처방을 바탕으로
차를 끓여서 말기 환자였던 그녀의 외숙모에게 권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녀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그 이후로도 몇 년을 더 살았습니다. 1922년부터 1978년 동안, Caisse는 이를 통해 수천명의 사람을 도왔습니다. 비록
그녀는 치료에 대한 보수는 받지 않았지만, Bracebridge에 위치한 그녀의 의원에 대한 후원은 받았습니다.
지난 7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Caisse의 처방에 대한 효과에 대해 체험하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1977년, 그녀는 Cambridge의 의사 Charles Brusch의 입회 하에 오리지널 처방은
Resperin Canada 이외에는 일체 유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녀의 모든 ESSIAC 처방과 상표권에 대한 일체의 사항을 Resperin Canada에 위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Resperin은 ESSIAC이 고통받는 환자를 도울 목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며, 대중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SSIAC은 현재 오랜 세월을 거쳐
효과를 인정받으며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사용되고 있습니다.
“ 암 전문 집단은 항상 그녀를 반대했다.”
에시악 암치료 문제로 지난 30여년동안 막강한 의료계를 상대로 벌려온 나의투쟁 이야기를 왜 글로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 왔다.
한가지 이유는 내가 문필가가 아니라는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내의견으로는 “암 전문집단”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많고, 제일 힘이강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어느정부보다 강력하고, 어느나라의 법에도 따르지않는다. 그들은 자체의 경찰을 소유하고, 어느누구던지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암치료에 도움이되는 것을 개발할려고 하는자가 있으면,
자신들이 만든 법정에서 다루게끔 해놯다. 이는 내의견으론, 독점 행위이다.
그들이 언론을 통제하고, “암의 완치”에관한 유익한기사를 발표하는신문들은 어떻든 편치못하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암을 완치할수있는 벙법이 채택된다면, 현재의 암 치료방식에 큰 혁명이 일어날것이고, 암 치료 위원회는 그런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것이다. 또 암연구를 위해 후하게 받아왔던
그많은 돈들을 좌지우지 할수없게 될꺼니까. 내의견으로는, 그들이 이런일이 벌어지게 놔둘일도없고, 연구비에 그많은돈을 써왔어도, 지난 50년동안 제대로 제일 무서운병의 완치에 대해서
일말의 희망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전쟁 4년동안 미국에서 약 284,000명이 전사했으나, 그 4년 동안, 미국에서 약 572,000명이 암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뭘해보지않고, 암학회에 더 많은 돈을 기부,기부,기부했다. 무슨일이던 이렇게 오래동안 기대해 볼만한 성과조차 없다면 지원을 해줄 가치가 없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암학회가 자기들 편이라고 하는 모든 말들을 진실로 알고 받아 들였다.
방사선이 암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방법을 암치료로 의료계가 할수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하고있다.
내의견으로는, 방사선이 암세포를 파괴하긴하나 궁국적으로 환자를 죽인다.
뉴욕으로 부터 두신사가 내가 암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하고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저 날 찾아왔다. 그들에게 모든것을 설명해줬지만, 그래도 의사와 면담을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
했으나 어떤의사든 “에세악 치료”를 얘기하거나, 아는체를 하는것은 건전치 못하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당했다.
그의사들은 수년 동안 암진단서를 환자들 에게 주어서 나한테로 보내 에시악 암 치료를 의뢰했고, 이 환자들이 회복하는것을 봤고, 자기내들이 몇개월밖에 못산다고 진단했던 바로
그환자들이 생존해서 수년동안 건강하게 살고있는데도, 이 치료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감히 발표를 못한다.
“에시악” 이 효과가 있다고 실토하는대신, 진단을 잘못했다고 발뺌을 한다.
암학회는 병리학 진단서를 요구한다. 내가 환자가 완치됐다고 하고, 우리정부의 병리사가 준 암 보고서를 보여주니까, 의과대학의 주치의인 노블박사가 일어나서,
암위원회앞에서 한다는 소리가(병리사도 틀릴수 있다고), 그것도 자기네의 병리사 말이다.
그리곤, 가끔, 의료 경찰관이 찾아와, 계속해서 암환자를 치료하면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바람에 할수없이, 고통당하는 중생을 위한 많은 일들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혼자서 이런 반대와 싸울수 없다. 암으로 고통받는환자들을 돕겠다는 내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진심이고, 지난 45년동안 바로 그래왔다. 사람들이 아직도 편지나 전화로 아니면 직접 집에
찾어와서 치료를 부탁한다. 왜냐면, 내가 년전에 완치했던 환자들이 아직도 생존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그들이 직접 지인한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법정에 불려 가야하고 , 만일 자가 치료용으로 약을 주면, 암환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7년징역을 치뤄야한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암 위원회는 국민이나 우리정부의 돈은 계속 받지만 암의 완치 방법은 결코 인정을 않할것이다.
온갖 억측들이 수없이 많었지만, 나는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역시, 의사회가 고통당하는 중생을 위해서 내처방을 사용하겠다는 보장을 하고, 현 암치료방식을 고집하기위해 내처방을
보류시키지 않겠 다는약속을 한다면, 언제든 내 처방을 의사회에 넘길려고 하고 있다.
온타리오 암위원회에서 나의 사례를 청문하고나서 의사회는그것이 인정을 받을 가치가있다는것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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